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그라티온 작전 (문단 편집) === 소련군 === 독일군이 이렇게 빈약한 데 비해 소련군의 공세 준비는 어마어마했다. 바그라티온 작전에 참여하는 4개 전선군은 제1벨로루시전선군의 좌익을 제외하고 14개 제병협동군, 1개 전차군, 4개 항공군, 118개 소총병 사단과 2개 소총병여단, 2개 기병군단, 8개 기계화 또는 전차군단, 수십 개의 포병 제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병력은 125만 4,300명이었고 전차와 자주포 4,070대, 야포 2만 4,363문, 항공기 5,327대로 장비했을 뿐 아니라 추가로 항공기 1,007대가 더 있었다. 제1벨로루시전선군의 좌익은 41만 6,000명의 병사와 1,748대의 전차와 자주포, 8,335문의 야포와 [[박격포]], 1,456대의 항공기가 5개의 제병협동군, 1개 전차군, 1개 항공군, 36개 소총병사단, 2개 기병군단, 4개 전차 또는 기계화군단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소련 주둔 미 육군 항공단 소속의 [[B-17]] 폭격기의 폭격지원이 있었는데[* 영국 처칠의 "멈추지 않는 폭격작전"(Unstoppable Bombing)으로 연합국은 영국, 튀니지, 소련에 각각 공항을 지어 폭격대가 기지복귀를 위해 선회해서 되돌아가다가 공격당해 격추당하는 일이 없도록 영국에서 뜬 폭격기가 독일을 폭격하고 튀니지의 비행장으로 쭉 날아갔다가, 튀니지에서 보급받고 다시 독일을 폭격하며 소련으로, 소련에서 다시 독일을 지나가며 영국으로 주둔지를 계속 옮겨가며 공격해대었다. 1943년 허스키 작전의 성공으로 이탈리아에 연합국 주둔지가 생기자 튀니지 비행장은 사실상 폐쇄하고 이탈리아에 새로운 비행장을 건설하여 더욱더 촘촘한 "멈추지 않는 폭격작전"을 실행했는데, 바그라티온 실행전에 몇몇 폭격비행단이 소련에 있는 연합군 소속 비행장에 주둔해 있던것을 루즈벨트 대통령의 제안으로 공격에 동원한 것이다. 당시 독일공군 전투기 총감이었던 [[아돌프 갈란트]]의 수기, "처음과 끝"에서 언급됨], 하필이면 미군 폭격기가 소련군 차량대열을 오폭해서 장교 1명과 그 참모진 서너명 정도가 죽고, 소련군 수십명이 부상당하는 바람에 스탈린의 직접명령으로 연합작전은 취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